mysql.h 없을 시 다운

apt-get install libmysqlclient-d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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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unute 


root계정 비번 바꾸기 

$ sudo passwd root 
Enter new UNIX password:
Retype new UNIX password:
passwd: password updated successfully



Hostname 변경

#vi /etc/hostname


빈 파일 또는 기존의 hostname 이 있다. 원하는 이름으로 바꾸면 된다.


적용하기


#hostname -F /etc/hostname


서버에 재접속하면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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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눅스 서버

잡학상식 2015. 10. 18. 13:52

# ubuntu

reboot // 시스템재시작


# 아파치 재시작 

/etc/init.d/apache2 restart 


# mysql 재시작 

/etc/init.d/mysql restart 


# ftp 재시작 

/etc/init.d/vsftpd restart 


# openssh 재시작 

/etc/init.d/openssh rest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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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버튼을 클릭하면 표시가 되고 문자열을 클릭해도 같은 효과가 있다.

<input type="radio" id="id지정" name="이름지정" value="값"><label for="id">문자열</label>


체크박스도 같은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

<input type="checkbox" id="id지정" name="이름지정" value="값"><label for="id">문자열</l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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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일에 안양시 관양시장에 다녀왔다..
그러나.....   불행이도 인증샷을 찍지 못하고 왔다.. ㅜㅜ;


전 : 전통시장에 갔다.
통 : 통로가 정말 좁다.
시 : 시끌시끌 와글와글
장 : 장볼때는 역시 시장이 좋다.



  온우리 상품권에서도 이벤트가 있나보네요..
Posted by 파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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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20세 이하 여자대표팀이 세계 3위 성적을 기록한 데 이어 26일(한국시간) 17세 이하 여자대표팀은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두 달 사이 한국 축구는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대회 최고 성적을 갈아치웠고, 대한민국 국민들은 불모지에 핀 꽃들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두 연령대의 소녀들의 감동 스토리에 '신화'라는 표현을 붙였다.

2002년 월드컵의 '4강 신화'가 잊힐 즈음 이 시대 소녀들이 쓴 신화. 그 속에는 현대인이 배워야 할 10가지 덕목이 스며있었다.

1. 실천

20세 이하 여자축구 대표팀이 한국을 떠날 때 얘기다. 팀의 에이스로 꼽혔던 지소연은 당시 '관심 가져달라'는 상투적인 부탁은 하지 않았다. 대신 '좋은 성적을 거둬 여자축구에 대한 관심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무모한 도전처럼 여겨졌지만, 그녀들은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았던 무대에서 온 힘을 다해 다부지게 싸웠다. 무모해 보였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20세 이하 태극소녀들은 승승장구하며 결국 4강에 진출해 자신들이 말 한 대로 관심을 이끌었다.

그간 케이블 채널에서만 해주던 자신들의 경기 생중계를 지상파 방송 편성까지 이끌어 냈고, 보란 듯 세계 3위를 기록한 후 귀국해 대통령에게 초청받아 청와대에 방문했다. 그녀들의 바람은 현실이 됐다.

'실천'은 끝까지 이어졌다. 기대 이상의 국제대회 성적을 이끌며 '스타'로 떠오른 지소연은 귀국 직후 소속팀으로 돌아가 자신의 대학 소속팀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나섰다. 그리고는 폭우 속에서도 기어코 골을 집어넣었다.

그녀는 소속팀까지 우승으로 이끌고, 국민들의 관심이 이어진 걸 확인한 그때서야 말했다. '꾸준한 관심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2.자신감

17세 여자 대표팀의 여민지는 대회 전 '결승에 꼭 가겠다. 목표는 8골이다'라고 밝혔다. 자신의 목표대로 결승도 갔고, 앞뒤 에누리 없는 8골을 넣고 우승컵과 득점왕(골든부트), 대회 MVP(골든볼)를 거머쥐었다. 그만큼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밤낮 가리지 않고 노력했고, 주변의 편견도 이겨냈다. 여기에 국제 경험을 통해 얻은 감각과 자신의 기량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대회에 임했다.

모든 선수들이 마찬가지였다. 겁나는 상대라고 주눅 들거나, 싸워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일은 없었다. 20세 이하 대표들은 독일과의 4강전을 앞두고 '이길 수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지소연은 당시 "우리가 조직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비록 승리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그 자신감은 분명 세계 3위 신화의 원동력 중 하나였다.17세 이하 대표들도 스페인과 4강을 앞두고 "결승까지 가겠다"며 승리 의지를 불태웠다. 20세 대표팀이 4강서 만난 독일, 17세 대표가 4강서 만난 스페인 모두 체격도, 커 온 환경도 앞선 축구 선진국이었다.

그러나 이들을 상대로 당당히 싸울 수 있었던 것은 태극소녀들이 가지고 있었던 자신감 덕분이었다.

3. 의지

의지는 이들에게 필요조건이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의지가 없었다면 영광은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여자 선수들은 몸도 마음도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훈련을 놀이로, 척박한 환경은 놀이터로, 주위의 만류는 권유로, 선입견은 응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지 않으면 견디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축구를 하겠다고 하자 강하게 만류했지만 휴대폰 배경화면에 '축구는 나의 인생'이라는 문구를 써놓은 딸을 보며 마음을 돌렸다는 이빛나 선수 어머니 사연이 눈길을 끈다.

이제는 그 뒤집혔던 속을 다시 되돌려 놓고 기쁨까지 선사한 이빛나의 이번 대회 활약은 보통 의지만으로는 있을 수가 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갖고, 당찬 의지로 헤쳐 나온 소녀들의 길은 나약한 현대인들이 한 번 쯤 들여다보고 배울만 한 길이다.

4. 따뜻함

소녀들의 활약 뒤엔 따뜻한 이야기가 있어 더 좋았다. 아픈 어머니께 '꼭 성공해 집에 찜질방을 지어 드리고 싶었다'는 지소연의 효심과 그 꿈을 위한 노력은 대단했다. 각박해진 이 시대에서 찾기 힘든, 동화 같은 꿈이 현실로 다가오는 모습을 우리는 목격했다.

3위의 쾌거를 이루고 돌아와 '이제 그 꿈이 현실로 다가온다'고 말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 지소연을 바라본 많은 이들의 가슴은 따뜻해졌다.

   

스타 출신 감독은 아니었지만, 불운을 딛고 일찌감치 음지에서 꾸준히 공부해가며 지도자로 성장해 온 최인철 감독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대표팀 감독 재직 전 가정 형편 어려운 선수들이 많아 사재를 털어 축구단 운영에 보탠 미담도 전해졌다. '자기 돈 안 들여가며 가르치는 여자축구 감독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한국 축구계의 숨은 이야기도 좋은 국제대회 성적을 거둔 뒤에야 세상 밖에 끄집어낼 수 있었다.

척박한 환경 속 선입견을 이겨내며 묵묵히 뛰어온 소녀들, 그리고 남들 쓰는 돈 몇 배 들여가며 딸들의 '무모한 도전'을 지원해준 모든 부모의 이야기는 드라마 한 편 한 편이다.

5. 팀 정신

조금 주목 받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선수들이 많다. 특히 어릴 때 주목받은 선수라면 더욱 그런 경우가 많다.

하지만 태극 소녀들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갑작스런 주목에도 태극소녀들은 더 겸손해졌고, 자신의 공은 '팀'에 돌렸다.U-17월드컵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살 떨리는 승부차기의 마지막 키커로 나서 승부를 마무리 지은 장슬기는 경기 후 방실방실 웃으며 "한 사람이 힘들 때 다 같이 뛰어주는 희생정신이야말로 우리 팀의 강점"이라며 팀의 장점을 말했다.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한 여민지는 '내가 잘했다기보다는 동료들이 잘 해 줘 내가 대신 상을 받았다'며 개인타이틀의 공까지 팀에 돌렸다. 좋은 성적을 거둔 직후 한 번쯤은 자신을 더 알리고 싶을 법한 소녀들. 하지만 소녀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팀의 힘'을 말했다.

6. 투혼

17세 여자대표팀에는 유독 부상 선수가 많았다. 그런 만큼 몸만으로는 안 돼 '혼을 던진'선수들도 많다.

에이스 여민지는 대회 개막을 두 달 앞두고 무릎 십자 인대를 다쳐 '대회에 뛸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비록 훈련량도 부족했고, 대회 기간에도 완치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놀라운 집중력과 골 결정력을 발휘하며 세계 최고 스타로 우뚝 섰다.

조별리그에서 1골1도움의 활약을 펼친 공격수 김다혜는 대회 초반부터 몸을 사리지 않고 뛰다 탈이 났다. 2차전 경기 도중 왼쪽 발목 인대 가 부분 파열되는 부상을 당해 독일과의 조별리그 3차전에 나설 수 없게 된 것이다.

한국 17세 여자대표팀의 사상 첫 우승에 진출한 데에는 '뇌진탕 투혼'을 펼치며 끝까지 골문을 지킨 김민아의 공도 컸다.

김민아는 6-5 난타전 끝 승리를 거머쥐었던 나이지리아와 8강전에서 공을 잡으려다 상대팀 선수와 충돌해 뇌진탕을 일으켰고, 이때 여파로 4강전까지 몸상태가 평소보다 한참이나 떨어졌다.

하지만 끝까지 대한민국의 골문을 지켰다. 일본과 결승전에서도 세밀한 패스에 이은 완성도 높은 슛을 날린 일본의 공세를 부지런히 막아내 우승에 힘을 보탰다.

7. 집념

20세 여자대표팀을 맡았던 최인철 감독에 대한 일화다. 대표팀 감독 초임시절, 한 마디로 '윗사람에게 찍힌'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대표팀 숙소의 식사시간, 최 감독과 한 테이블에서 식사하게 된 대표팀의 한 간부가 가장 늦게 내려와 대화도 없이 밥 먹고 식사가 끝나자 바로 일어나 숙소로 돌아간 최 감독을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간부의 '오해'는 금새 풀렸다. 대회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데, 최 감독이 앉자마자 노트북을 열고 경기 분석에 열중이라는 것이다. 알고 보니 당시 못마땅히 여겼던 때도, 최 감독은 경기를 분석하다 내려와 밥만 먹고, 지체할 새 없이 숙소로 올라가 경기 분석을 했다는 것이다. 집념에서 생긴 습관이었다. 최 감독은 누구보다도 여자축구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집념을 발휘했다.

2000년 동명초등학교 여자축구팀 창단 감독으로 있었던 이후 오주중, 동산정보고(前 위례정산고) 감독 등을 거치며 꾸준히 여자팀 감독을 맡아왔고, 앞으로도 남자 팀에 눈을 돌리지 않고 여자축구 발전에 힘을 쏟겠다고 말할 정도로 집념 강한 지도자다. 여자축구에 대한 애정과, 이를 발전시키고자하는 집념은 이번 쾌거의 큰 밑거름이었다. 

8. 뒷받침

숨은 행정 지원은 '여자축구 황금세대'의 시작에 중요한 발판이었다. 잘 알려진 2002 한일월드컵 잉여금 투자 외에도 여자축구 관계자들의 세밀한 지원이 있었기에 여자축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도 바뀌었고, 가시적 성과도 따랐다.

5명 남짓 상주했던 여자 축구연맹 직원들은 당장의 성적도 좋지만, 여자축구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애썼다.

가장 먼저 '남자 아이들이 하는 격렬한 운동'이라는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각급 지도자들에게 '아름다운 축구'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짧은 머리에 우락부락한 표정, 남자 선수들과 나란히 세워도 구분 안가는 여자 선수들에게 '경기력에 지장이 없다면, 자신을 가꿔보라'고 권장했다.

   

각 대회의 스폰서들도 여성 의류업체와 가방업체 등을 선정해 선수들이 '꾸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줬고, 선수들 스스로도 그간 감춰왔던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2006년 피스퀸컵 여자축구대회에 앞서서는 앙드레김 패션쇼 무대에도 여자축구 선수들을 세우기 위해 애썼다. 선수 본인들이야 '하이힐보다 축구화가 편하다'며 어색했지만 드레스를 입혀 놓으니 축구선수인지 모델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여자축구가 아름답게 변하고 있었다.

얼짱 골키퍼로 이름을 날렸던 20세 대표 문소리나 인터넷상에서 일본 선수와 '얼짱 대결'을 펼치기도 했던 이유나 같은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선수들이 나타난 것도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운동만 하는 선수는 안 된다'는 원칙을 세워, '공부하는 축구' 실천을 위한 노력도 이어졌다. 한 학습지 회사의 지원을 이끌어내 대부분의 여자축구선수들이 학습지를 통해 마음 놓고 수준에 맞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


9. 온화함의 힘

17세 이하 대표팀의 최덕주 감독은 '온화한 리더십'의 대명사였다. 언뜻 보면 큰 체격에 희끗한 머리, 큰 코에 이마주름까지 '호랑이 선생님'으로 비춰지기 쉽지만, 아이들 한명 한명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고 선수들의 큰 실수에도 온화함을 잃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우승 뒤 인터뷰를 살펴본다면, 겸손함과 온화함을 갖춘 따뜻한 지도자임을 알 수 있다. 우승 후 그는 "어떠한 감독이라도 이 선수들을 데리고 벤치에 앉았더라도 우승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모든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경기를 봐도 안 풀린 순간 화를 내거나 답답해하는 모습 대신 골똘히 고민하고 선수들을 격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승 후에는 한없이 맑은 표정으로 선수들을 향해 박수쳐줬다. 여민지는 이런 최 감독에 대해 "따뜻한 아버지 같은 감독"이라고 표현했다.

'공을 즐겁게 차는 일'을 우선으로 여긴다는 최 감독. 그의 철학은, 승부 앞에서는 체벌도 욕설도 마다 않는 한국 체육계는 물론 승패에 연연해가며 남을 헐뜯는 게 일상이 된 우리 사회에도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10. 순수함의 힘

선수들은 이런 온화한 가르침을 그대로 흡수했다. 좋은 말로 하면 '만만하게 보는' 요즘 시대 사람들의 나쁜 습관은 없었다. 순수하고 진심어린 가르침을 가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천한 순수한 소녀들이었기에 가능했던 '신화 창조'다.

'순수함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불순물 없이 만들어진 쇳덩이가 가장 강하듯, 다른 생각 않고 오로지 목표만을 향해 모든 것을 쏟아낸 선수들의 자세가 세계 정상을 이끈 원동력이었다.

경기장 밖에서는 물장구 치고 깔깔거리던 소녀의 모습 그대로, 경기장에서는 나라를 대표한 여전사와 같은 투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우리들이 '태극소녀 신화'에서 배워야 할, 쉬워 보이면서도 행하기는 어려운 마지막 덕목이다.

출처 :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800055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80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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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gle’ 은 무슨 뜻일까?

1998년 9월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의 대학원생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이 공동으로 설립하였다. 이듬해 6월 2500만 달러의 공동 출자 지원을 받아 검색 서비스를 시작한 뒤, 2004년 8월 19일 나스닥에 상장하였다. 구글은 'googol'에서 따온 말로, 10100을 의미한다.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

많은 클릭 수를 기원하면서, 회사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1 googol = 10100

이 수의 이름은 1938년 미국의 수학자 에드워스 카스너(Edward Kasner)와 그의 9살짜리 조카 밀턴 시로타(Milton Sirotta)에 의해 지어졌다. 카스너는 이 개념을 그의 저서 수학과 상상(Mathematics and the Imagination)에 수록했다

구골플렉스(googolplex)는 10의 googol제곱이다. (1 googolplex = 10googol)

인터넷 검색엔진 구글(Google)은 처음에 구골(Googol)로 등록하려다가 실수로 사명을 잘못 표기한 것에서 구글로 등록하여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출처 – 위키백과)

그래서 영어의 숫자 체계를 알아봤다.

one (1) ten (10) hundred (100)

thousand (103 천) million (106 백만) billion (109 십억)

trillion (1012 조) quadrillion (1015 천조) quintrillion (1018 백경)

sextillion, septillion, octillion, nonillion, decillion, undecillion, duodecillion ····

 

우리나라의 숫자 체계

일 - 십 - 백 - 천 –

만(萬 104) – 억(億 108) – 조(兆 1012) - 경(京 1016)

해(垓 1020) - 자(秭 1024) - 양(穰 1028) - 구(溝 1032)

간(澗 1036) - 정(正 1040) - 재(載 1044) - 극(極 1048) –

항하사(恒河沙 1052 ) - 아승기(阿僧祇· 1056) - 나유타(那由他·1060)

불가사의(不可思議· 1064) - 무량대수(無量大數 1068)

살펴본 숫자 체계에 의하면

서양의 숫자는 10의 3, 6, 9 승의 형식으로, 3의 배수로, 우리나라는 10의 4, 8, 12 승의 형식으로, 4의 배수로 이름을 부여한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네 자리 마다 찍으면 더욱 편리할 텐데... 왜 세 자리마다 comma를 찍어 사용하는 걸까?  

http://blog.naver.com/yw_pyo?Redirect=Log&logNo=50015721211





<아이뉴스24> | 기사입력 2005-07-17 16:26 | 최종수정 2005-07-17 16:26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야만인, '또 다른 조직화된 비공식적 예언(Yet Another Hierarchical Officious Oracle)'...인터넷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해온 세계 최대의 포털 사이트, 아니 인터넷 미디어인 야후(YAHOO)!의 어원이다.

야후!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전기공학 박사과정을 받던 제리 양(36)과 데이비드 파일로(38)가 94년 4월 자신들이 배우는 교과과정별로 홈페이지를 분류한 웹 목록을 만든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들이 캠퍼스 연구동 뒷 편에 있던 낡은 트레일러에서 만든 '데이비드와 제리의 웹(World Wide Web) 가이드'는 인터넷에 소개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취미 삼아 만들었던 자신들의 분류 목록이 인기를 끌자 이들은 아예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어렵게 창업자금 100만 달러를 마련한 제리 양과 데이비드 파일로는 마침내 1995년 3월 2일 야후란 회사를 공식 설립했다.

사업 시작 10년 만에 야후는 연 매출 35억7천만 달러, 순익 8억4천만 달러를 올리는 시가총액 500억 달러의 거대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성장하는 인터넷과 같다.

현재 전 세계 25국에서 지역별 사이트를 운영하는 야후의 하루 방문자 수는 2억 명이 넘는다.

검색 엔진 ‘야후!(Yahoo!)’는 Yet Another Hierarchical Officious Oracle의 약자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Gulliver’s Travels》에 나오는 사람 모양의 짐승을 가리킨다. 속어로 yahoo는 ‘시골뜨기’를 가리키는데 창업자인 제리 양과 데이비드 파일로는 농담 삼아 자신들을 어수룩한 외모의 시골뜨기에 비유했다고 한다. -최용식-

 

 





NHN㈜에서 제공하고 있는 인터넷 포털사이트로, 1999년 6월 인터넷 포털비즈니스를 시작했다.
2001년 9월에는 NHN(주)로 회사명을 바꿨는데, NHN은 Next Human Network의 머리글자이다.
네이버(naver)는 navigate(항해하다)와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er의 합성어로 '항해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엔에이치엔(주) [NHN Corporation]

데이터베이스 및 온라인 정보제공업체. 1999년 6월 네이버컴(주)으로 설립되었으며 2001년 9월 현재의 상호(NHN:Next Human Network)로 변경하였다. 주요 사업은 검색포털사이트 ‘네이버’ 운영, 게임사이트 운영 등이다.

00년 7월 한게임커뮤니케이션, 원큐, 서치솔루션 3개사를 합병하였고 9월에 한게임재팬 법인, 11월 네이버재팬 법인을 설립하였다. 2002년 10월 코스닥에 상장하였으며, 2003년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주)솔루션홀딩스, 모바일 멀티미디어기술 전문개발업체 (주)아이브이엔테크놀로지를 인수하였고 (주)두산 세계대백과 '엔싸이버'와 지식DB 공동구축에 대한 제휴를 체결하였다.

2004년 6월 중국 해홍사(社)와 합작법인을 설립하여 공동경영을 시작하였고, 11월 게임개발스튜디오인 NHN게임스, 2005년 7월 미국법인 NHN USA를 설립하였다. 2006년 6월 대한민국 코스닥 대상을 수상하고 10월 스토리지 전문업체 데이타코러스를 인수한 데 이어 한게임이 국가 브랜드 경쟁지수(NBCI) 게임 포털 부문에서 2년 연속 1위를 차지하였다. 2008년 11월 코스닥 상장 폐지 후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하였다.

 





(주)다음커뮤니케이션 [Daum Communications.]

1995년 2월 이재웅·박건희·이택경이 공동으로 창업한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포털사이트로서 1997년 5월 국내 최초로 무료 이메일을 제공하는 한메일넷(hanmail.net)으로 출발하였다.

1999년 5월 온라인 커뮤니티 다음카페를 개설하여 네티즌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으며, 7월에 명칭을 다음으로 바꾸고 인터넷 포털사이트로 개편하였다. '다음'의 명칭에는 인터넷을 통해 차세대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선도해 나가겠다는 뜻과 다양한 소리[多音]를 조화롭게 내보자는 의미가 중첩되어 있다.

2000년 1월부터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였고, 이해 3월 온라인 종합 쇼핑몰 다음쇼핑을 개설하였으며, 7월에 증권·보험·부동산 등 재테크 정보를 제공하는 다음금융플라자를 개설하였다. 2000년 8월 국내 단일 사이트로는 처음으로 하루 페이지뷰가 1억 회를 넘었다. 2002년 1월 영화주간지 《필름2.0》을 발간하는 미디어2.0을 인수하여 영화 섹션의 서비스를 강화하였다. 2003년 1월부터 뉴스를 제공하고 이에 관한 토론과 참여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목표로 하는 미디어다음을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같은 해 9월에 다음쇼핑이 d&shop으로 브랜드를 변경하였고, 2005년에는 온켓을 인수하여 마켓플레이스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였다. 2007년 5월에는 자체 검색엔진을 개발하여 웹문서 검색 시범서비스를 시작하였다.

한메일넷은 대표적인 이메일로 자리잡았다. 이밖에 실시간으로 메시지와 파일을 전송하고 채팅까지 즐길 수 있는 다음메신저, 휴대폰으로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무선인터넷 서비스, 영화·드라마·게임·이종격투기 등을 제공하는 큐브(CUVE), 각종 생활정보를 제공하는 로컬, 어린이를 위한 꿈나무, 여성을 위한 미즈넷, 여행, 운세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다음커뮤니케이션는 창립 이래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인터넷 업체로 성장하였으며, 2003년 9월 벤처기업협회가 주최하는 벤처기업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관련 회사로 온라인 음반 쇼핑몰인 ㈜오이뮤직과 다음다이렉트자동차보험㈜을 비롯하여 ㈜커리어다음, ㈜다음소프트 등이 있다.

[COVER STORY | 경쟁力,검색力,구글力 02] ‘기초 튼튼’ 구글, 네이버 넘어서나

| 기사입력 2009-11-27 16:33

[주간동아]

 

 

구글과 국내 포털을 비교하려면 근원적 질문을 하나 해야 한다. 왜 구글과 국내 포털의 웹페이지는 첫 화면부터 다르게 생겼을까? 구글(www.google.co.kr)의 첫 페이지엔 검색창 하나만 심플하게 띄워져 있다.  

반면 네이버(www.naver.com)나 다음(www.daum.net)의 첫 페이지는 수많은 콘텐츠와 광고로 가득 차 있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한미(韓美) 스타 기업의 차이를 모두 설명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글의 첫 화면은 이 회사의 색깔과 자부심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구글은 연간 광고단가로 따지면 수천억원대에 달할 첫 화면을 당당하게 비워두고 있다. ‘검색한 당신, 떠나라’는 것이 구글의 철학이다.

“검색 결과를 보여주고 이용자를 빨리 해당 사이트로 보내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공공연하게 말할 정도다. 정보 검색의 강자로 콘텐츠를 소유하지 않으며, 첫 화면에 광고를 싣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자신감과 그것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자기 예언적 다짐. 그것이 검색창 하나를 띄워놓은 첫 화면에 오롯이 녹아 있다. 검색 결과와 광고도 섞지 않고 그 흔한 광고 팝업도 띄우지 않는다. 구글은 이러한 모든 원칙을 ‘사용자 중심의 철학’으로 설명한다.

사용자가 구글 사이트에 머무르는 시간이 짧을수록 구글 사이트에서 광고를 보는 시간도 줄어들고 광고 수익도 줄어든다. 하지만 원하는 정보를 빨리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사용자는 이후에도 계속 구글을 이용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구글 사용 빈도가 늘어 광고 수익도 늘 것이라는 먼 안목으로 접근한다. 무엇이든 중심에는 사용자가 있으며 사용자의 검색 경험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하면 자연스럽게 다른 비즈니스들이 따라오리라 믿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이 옳았다는 사실은 전 세계 검색시장 점유율 70%에 가까운 독보적인 성적으로 증명되고 있으며, ‘사악하지 말자(Don’t be evil)’라는 구글의 슬로건과 더불어 수많은 마니아를 탄생시키는 배경이 됐다. 이에 비해 네이버, 다음 등에는 볼 것이 많다. 웹툰, 쇼핑 정보, 누리꾼 사이의 핫이슈 등을 즐기다 보면 몇 시간이고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다. 뉴스를 읽고 댓글을 달며 아고라에 의견을 낼 수도 있다. 혹자는 이런 거대한 놀이터를 ‘가두리 양식장’이라고 부른다.

검색엔진으로 시작한 네이버가 다른 사이트로 보내주는 포털(portal·관문)의 성격을 포기하고 토털 서비스(total service·종합 서비스) 사이트로 변하고 있다는 지적에서다. 최근 들어 상당한 개방 움직임을 보이고는 있지만, 1년 전만 해도 네이버에 들어온 이용자가 다른 사이트로 이동하는 비율은 고작 20%에 지나지 않았다. 올해도 네이버의 행보가 ‘네이버랜드’를 확대하는 쪽으로 향한 것엔 변함이 없다. 다음이 개방화에서 한발 앞서가고 있다지만, 네이버 다음 네이트 파란 등 화려하고 복잡한 국내 포털의 기본 방침은 ‘검색한 당신, 그 자리에서 놀아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부구조의 구글, 상부구조의 네이버·다음

한미 스타 기업이 엇비슷한 시기에 태동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1995년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던 이재웅은 급거 귀국해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창립했다. 그리고 한메일로 시작해 검색, 카페 서비스를 묶은 다음은 2000년 초 부동의 1위로 여겨지던 야후코리아를 물리치고 국내 검색시장 1위에 올라섰다. 한편 1997년 삼성SDS의 이해진 대리는 검색엔진 개발로 제1호 사내벤처 사장이 됐다. 1999년 분사한 네이버컴은 이후 게임업체 한게임, 검색솔루션업체 서치솔루션과 합병했다.

그리고 상장 2년 만인 2004년 코스닥 업종 1위에 등극했으며 국내 포털시장에서도 다음을 누르고 부동의 수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1998년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 과정에 있던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연구 프로젝트에서 힌트를 얻어 검색업체 ‘구글’을 설립했다. 이들은 천문학적인 수를 의미하는 구골(googol·10의 100승)을 회사 이름으로 정하기로 했지만, 철자를 잘못 알아 구글(google)이 사명이 됐다.

6년 후 나스닥에 등록한 구글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 등 유수 IT기업을 단번에 위협하며 가장 빨리 성장하는 기업이 됐다. 이들의 창립 시기는 비슷했지만 스타 기업을 탄생시킨 한국과 미국의 IT 환경은 달랐다. 미국은 한국보다 초고속 인터넷 속도가 느렸다. 지금도 중위권 수준이다. 자본주의에 충실한 미국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예산을 투자해 망을 깔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이 IT의 본류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컴퓨터의 두뇌 노릇을 하는 프로세서, 각종 정보를 처리·저장하는 하드웨어와 운영체제가 탄생한 곳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이란 기술도 미국의 대학과 군 연구기관에서 만든 것이다. 비록 초고속망 보급률은 낮았지만 미국은 인터넷산업을 뿌리부터 뒤흔들 ‘괴물’을 잉태하고 있었던 것. 미국의 구글은 처음부터 인터넷산업의 기술 토대를 완성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웹 위에서 무엇을 보여줄까를 고민하기보다 콘텐츠를 잘 보여줄 수 있는 하부구조의 메커니즘을 재설계하는 데 더 신경을 썼다.

구글은 검색에 최적화한 슈퍼컴퓨터를 자체 개발했으며, 전력공급이 원활한 수력발전소 옆에 데이터센터를 직접 지었다. 미국-일본 간 해저 케이블망을 직접 깔겠다고 발표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위키노믹스’의 저자 돈 탭스코트는 “구글은 세계 4위의 하드웨어 제조업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네이버와 다음의 등장은 구글과 좀 다르다. 한국은 정부의 대대적인 산업진흥정책의 일환으로 산간마을까지 초고속 인터넷을 일사천리로 깔았다.

원천기술과 기반기술은 부족했지만, 무엇이든 담고 신나게 달릴 수 있는 ‘정보 고속도로’만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문제는 여기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였다. 네이버의 출발과 진화 과정 역시 ‘초고속망 위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상부구조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1990년대 후반 스타크래프트, 리니지 등 온라인 게임이 큰 인기를 끌고 PC방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네이버와 다음은 뉴스를 서비스의 중심에 내세우며 카페를 만들고 게임을 제공하는 등 ‘웹 위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주력했다.

검색엔진으로 출발한 네이버가 네이버컴 시절 한게임과 합병한 것은 ‘초고속망 강국’ 한국에선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이러한 IT 환경의 차이는 서로 다른 전문경영인을 만나 더욱 증폭됐다. 구글은 선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인 에릭 슈미트를 전문경영인으로 영입했다. 그리고 기업 비전을 ‘세계 정보의 재편’으로 내세우고, 언뜻 봐서는 검색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기술까지 확보했다. 반면 네이버와 다음은 콘텐츠와 미디어 전략가를 영입했다.

기술 우선주의 vs 서비스 우선주의

이처럼 웹 아래의 문제, 즉 하부구조에 골몰해온 구글은 기술 우선주의 경향을 띤다. 웹 위의 문제, 즉 상부구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착해온 네이버와 다음은 서비스 우선주의 경향을 드러낸다.

물론 우선적인 관심을 어디에 두는지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구글이 꼭 기술적인 면만 강조해온 것은 아니다. 구글도 결국 검색 사용자에 대한 서비스를 향상시키기 위해 하부적 토대에 엄청난 투자를 해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에 기반한 구글 검색의 위력은 방대한 색인 페이지와 빠른 속도에서 나온다. 웹 페이지를 방문해 정보를 수집하는 웹로봇, 수집한 정보를 계산해 빠른 속도로 결과를 도출하는 슈퍼컴퓨터 운용 능력에서 구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아무리 좋은 서비스라도 검색 결과가 느리다면 다시 한 번 고민해 출시한다. ‘이런 검색 결과는 없겠지’ 하며 매우 특이한 검색어를 넣어도 용케 결과를 찾아내주는 게 구글이다.

모든 것이 자동화해 있으며 인위적으로 편집해 순위를 뒤바꾸는 일은 없다. 구글이 빠른 시간에 전 세계 100개 언어를 지원할 수 있는 것도 자동화 시스템 덕분이다. ‘전 세계 언어의 교차번역’이라는 엄청난 프로젝트에 도전하는 것도 구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전 세계에 산재한 방대한 이미지 정보를, 그 이미지가 얼굴이든 라인아트이든 고해상도이든 상관없이 더욱이 저작권 문제까지 알려주며 찾아줄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웹 검색을 할 때도 특정 형식의 파일만 찾거나 특정 사이트를 구글 검색을 이용해 숨겨진 정보까지 찾는 등 다른 포털에서는 생각하지 못한 서비스가 구글에서는 가능하다. 일례로 ‘초록색 말미잘’이 실제 어떤 모습인지 찾아보자. 네이버 이미지 검색에선 결과가 없는 반면, 구글에선 다양한 이미지가 쏟아져 나온다. 구글의 강점인 방대한 색인 페이지, 색깔을 인지하는 데이터 처리 기능이 반영된 결과다.

반면 네이버는 친절하게 떠먹여주는 서비스로 경쟁업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네이버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통합검색’은 검색 품질을 한 단계 높였다고 평가받는다. 단순히 웹사이트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뉴스’ ‘블로그’ ‘이미지’ ‘사전’ 등 정보의 속성에 따라 분류해 결과를 보여준다. 누리꾼이 뉴스, 이미지, mp3 등 자료의 속성에 따라 정보를 찾는다는 행태에 주목한 것이다.

인기 콘텐츠를 위주로 다룬다는 한계는 있지만, 연관성 있는 콘텐츠까지 깔끔하게 정리해놓는 네이버의 친절함에 한국 누리꾼은 길들여졌다. 이런 특성 때문일까. 구글은 주로 통신업체의 견제를, 네이버와 다음은 콘텐츠업체, 즉 신문과 방송 등의 견제를 받고 있다. 구글을 대하는 산업계의 반응은 ‘두렵다’는 것. 모바일 및 PC 운영체제 ‘안드로이드’와 ‘크롬OS’를 만들고 새 웹브라우저를 내놓은 구글은 이미 마이크로소프트의 심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활력 잃은 한국 웹 생태계는 어디로?

한편 네이버, 다음 등 포털업체를 대하는 국내 전통매체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편리한 포털로 뉴스 구독이 집중됨에 따라 매출에 악영향을 받은 신문·방송업계는 ‘낚시질 기사’ ‘과도한 연성기사 노출’ ‘포털 저널리즘’ 등 여러 비판을 제기한다. 국회에선 10여 개 포털 견제 법안이 제출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네이버가 콘텐츠 사업자와의 관계에서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며 시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네이버는 구글 같은 하부구조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IBM과의 제휴 중단 같은 극약 처방을 내리는가 하면, 웹 운영이 폐쇄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하자 뉴스 화면을 개방화했다. 한때 시장점유율 70~80%에 달하던 네이버의 독과점 행태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웹 관계자들은 구글코리아가 국내 웹 생태계의 숨통을 터줄 것으로 기대했다. 한국시장 진출 소식만으로도 국내 포털들의 주가를 폭락시킨 구글이다. 그러나 각종 정보를 찾는 데 유능하다는 구글의 장점이 오히려 과소평가되고 있는 것이 현재 실정이다.

문제는 국내 검색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선방(善防)하고 있는 데 대해 박수만 보낼 수 없다는 아이러니에 있다. 토종 포털들이 해당 사이트를 활성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를 자사 사이트에 가둬두는 ‘폐쇄전략’을 오랫동안 취해 한국 웹 생태계 전체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점유율 80%를 훌쩍 뛰어넘는 네이버와 다음에 진입하지 못한 서비스나 콘텐츠는 늘 하루살이처럼 위태로운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트위터’ ‘페이스북’ ‘마이스페이스’ 등 새로운 스타 기업을 낳았던 웹 2.0 바람도 국내에서는 말만 무성했지 이렇다 할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물론 네이버도 ‘웹 생태계 활성화’를 말한다. 여론을 의식한 결과라고만 볼 수 없을 정도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그러나 늘 분기 실적 압박을 받는 공개기업의 특성상 네이버는 개방화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다. 네이버의 속도 조절은 전체 한국 웹 생태계의 발전 측면에선 실기(失期)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검색시장은 어떻게 될 것인가. 분명한 사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다양한 정보를 모두 담아내면서도 사용자가 의도하는 정보를 족집게처럼 집어낼 수 있는 검색 사이트가 최후의 승자가 되리라는 점이다. 차고 넘치는 ‘정보의 바다’에서 사용자가 제공한 정보와 가장 관련성이 깊고, 남들이 잘 알지 못하며, 최신의 유용한 정보를 빠르게 검색해 제공하는 자(者), 과연 누구일까.

도움말 : 류현정 IT 칼럼리스트, ‘구글 vs 네이버 검색대전쟁’ 저자 twitter.com/dreamshot

정리=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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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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