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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 이하 여자대표팀이 세계 3위 성적을 기록한 데 이어 26일(한국시간) 17세 이하 여자대표팀은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두 달 사이 한국 축구는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대회 최고 성적을 갈아치웠고, 대한민국 국민들은 불모지에 핀 꽃들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두 연령대의 소녀들의 감동 스토리에 '신화'라는 표현을 붙였다.

2002년 월드컵의 '4강 신화'가 잊힐 즈음 이 시대 소녀들이 쓴 신화. 그 속에는 현대인이 배워야 할 10가지 덕목이 스며있었다.

1. 실천

20세 이하 여자축구 대표팀이 한국을 떠날 때 얘기다. 팀의 에이스로 꼽혔던 지소연은 당시 '관심 가져달라'는 상투적인 부탁은 하지 않았다. 대신 '좋은 성적을 거둬 여자축구에 대한 관심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무모한 도전처럼 여겨졌지만, 그녀들은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았던 무대에서 온 힘을 다해 다부지게 싸웠다. 무모해 보였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20세 이하 태극소녀들은 승승장구하며 결국 4강에 진출해 자신들이 말 한 대로 관심을 이끌었다.

그간 케이블 채널에서만 해주던 자신들의 경기 생중계를 지상파 방송 편성까지 이끌어 냈고, 보란 듯 세계 3위를 기록한 후 귀국해 대통령에게 초청받아 청와대에 방문했다. 그녀들의 바람은 현실이 됐다.

'실천'은 끝까지 이어졌다. 기대 이상의 국제대회 성적을 이끌며 '스타'로 떠오른 지소연은 귀국 직후 소속팀으로 돌아가 자신의 대학 소속팀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나섰다. 그리고는 폭우 속에서도 기어코 골을 집어넣었다.

그녀는 소속팀까지 우승으로 이끌고, 국민들의 관심이 이어진 걸 확인한 그때서야 말했다. '꾸준한 관심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2.자신감

17세 여자 대표팀의 여민지는 대회 전 '결승에 꼭 가겠다. 목표는 8골이다'라고 밝혔다. 자신의 목표대로 결승도 갔고, 앞뒤 에누리 없는 8골을 넣고 우승컵과 득점왕(골든부트), 대회 MVP(골든볼)를 거머쥐었다. 그만큼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밤낮 가리지 않고 노력했고, 주변의 편견도 이겨냈다. 여기에 국제 경험을 통해 얻은 감각과 자신의 기량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대회에 임했다.

모든 선수들이 마찬가지였다. 겁나는 상대라고 주눅 들거나, 싸워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일은 없었다. 20세 이하 대표들은 독일과의 4강전을 앞두고 '이길 수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지소연은 당시 "우리가 조직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비록 승리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그 자신감은 분명 세계 3위 신화의 원동력 중 하나였다.17세 이하 대표들도 스페인과 4강을 앞두고 "결승까지 가겠다"며 승리 의지를 불태웠다. 20세 대표팀이 4강서 만난 독일, 17세 대표가 4강서 만난 스페인 모두 체격도, 커 온 환경도 앞선 축구 선진국이었다.

그러나 이들을 상대로 당당히 싸울 수 있었던 것은 태극소녀들이 가지고 있었던 자신감 덕분이었다.

3. 의지

의지는 이들에게 필요조건이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의지가 없었다면 영광은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여자 선수들은 몸도 마음도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훈련을 놀이로, 척박한 환경은 놀이터로, 주위의 만류는 권유로, 선입견은 응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지 않으면 견디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축구를 하겠다고 하자 강하게 만류했지만 휴대폰 배경화면에 '축구는 나의 인생'이라는 문구를 써놓은 딸을 보며 마음을 돌렸다는 이빛나 선수 어머니 사연이 눈길을 끈다.

이제는 그 뒤집혔던 속을 다시 되돌려 놓고 기쁨까지 선사한 이빛나의 이번 대회 활약은 보통 의지만으로는 있을 수가 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갖고, 당찬 의지로 헤쳐 나온 소녀들의 길은 나약한 현대인들이 한 번 쯤 들여다보고 배울만 한 길이다.

4. 따뜻함

소녀들의 활약 뒤엔 따뜻한 이야기가 있어 더 좋았다. 아픈 어머니께 '꼭 성공해 집에 찜질방을 지어 드리고 싶었다'는 지소연의 효심과 그 꿈을 위한 노력은 대단했다. 각박해진 이 시대에서 찾기 힘든, 동화 같은 꿈이 현실로 다가오는 모습을 우리는 목격했다.

3위의 쾌거를 이루고 돌아와 '이제 그 꿈이 현실로 다가온다'고 말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 지소연을 바라본 많은 이들의 가슴은 따뜻해졌다.

   

스타 출신 감독은 아니었지만, 불운을 딛고 일찌감치 음지에서 꾸준히 공부해가며 지도자로 성장해 온 최인철 감독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대표팀 감독 재직 전 가정 형편 어려운 선수들이 많아 사재를 털어 축구단 운영에 보탠 미담도 전해졌다. '자기 돈 안 들여가며 가르치는 여자축구 감독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한국 축구계의 숨은 이야기도 좋은 국제대회 성적을 거둔 뒤에야 세상 밖에 끄집어낼 수 있었다.

척박한 환경 속 선입견을 이겨내며 묵묵히 뛰어온 소녀들, 그리고 남들 쓰는 돈 몇 배 들여가며 딸들의 '무모한 도전'을 지원해준 모든 부모의 이야기는 드라마 한 편 한 편이다.

5. 팀 정신

조금 주목 받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선수들이 많다. 특히 어릴 때 주목받은 선수라면 더욱 그런 경우가 많다.

하지만 태극 소녀들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갑작스런 주목에도 태극소녀들은 더 겸손해졌고, 자신의 공은 '팀'에 돌렸다.U-17월드컵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살 떨리는 승부차기의 마지막 키커로 나서 승부를 마무리 지은 장슬기는 경기 후 방실방실 웃으며 "한 사람이 힘들 때 다 같이 뛰어주는 희생정신이야말로 우리 팀의 강점"이라며 팀의 장점을 말했다.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한 여민지는 '내가 잘했다기보다는 동료들이 잘 해 줘 내가 대신 상을 받았다'며 개인타이틀의 공까지 팀에 돌렸다. 좋은 성적을 거둔 직후 한 번쯤은 자신을 더 알리고 싶을 법한 소녀들. 하지만 소녀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팀의 힘'을 말했다.

6. 투혼

17세 여자대표팀에는 유독 부상 선수가 많았다. 그런 만큼 몸만으로는 안 돼 '혼을 던진'선수들도 많다.

에이스 여민지는 대회 개막을 두 달 앞두고 무릎 십자 인대를 다쳐 '대회에 뛸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비록 훈련량도 부족했고, 대회 기간에도 완치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놀라운 집중력과 골 결정력을 발휘하며 세계 최고 스타로 우뚝 섰다.

조별리그에서 1골1도움의 활약을 펼친 공격수 김다혜는 대회 초반부터 몸을 사리지 않고 뛰다 탈이 났다. 2차전 경기 도중 왼쪽 발목 인대 가 부분 파열되는 부상을 당해 독일과의 조별리그 3차전에 나설 수 없게 된 것이다.

한국 17세 여자대표팀의 사상 첫 우승에 진출한 데에는 '뇌진탕 투혼'을 펼치며 끝까지 골문을 지킨 김민아의 공도 컸다.

김민아는 6-5 난타전 끝 승리를 거머쥐었던 나이지리아와 8강전에서 공을 잡으려다 상대팀 선수와 충돌해 뇌진탕을 일으켰고, 이때 여파로 4강전까지 몸상태가 평소보다 한참이나 떨어졌다.

하지만 끝까지 대한민국의 골문을 지켰다. 일본과 결승전에서도 세밀한 패스에 이은 완성도 높은 슛을 날린 일본의 공세를 부지런히 막아내 우승에 힘을 보탰다.

7. 집념

20세 여자대표팀을 맡았던 최인철 감독에 대한 일화다. 대표팀 감독 초임시절, 한 마디로 '윗사람에게 찍힌'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대표팀 숙소의 식사시간, 최 감독과 한 테이블에서 식사하게 된 대표팀의 한 간부가 가장 늦게 내려와 대화도 없이 밥 먹고 식사가 끝나자 바로 일어나 숙소로 돌아간 최 감독을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간부의 '오해'는 금새 풀렸다. 대회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데, 최 감독이 앉자마자 노트북을 열고 경기 분석에 열중이라는 것이다. 알고 보니 당시 못마땅히 여겼던 때도, 최 감독은 경기를 분석하다 내려와 밥만 먹고, 지체할 새 없이 숙소로 올라가 경기 분석을 했다는 것이다. 집념에서 생긴 습관이었다. 최 감독은 누구보다도 여자축구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집념을 발휘했다.

2000년 동명초등학교 여자축구팀 창단 감독으로 있었던 이후 오주중, 동산정보고(前 위례정산고) 감독 등을 거치며 꾸준히 여자팀 감독을 맡아왔고, 앞으로도 남자 팀에 눈을 돌리지 않고 여자축구 발전에 힘을 쏟겠다고 말할 정도로 집념 강한 지도자다. 여자축구에 대한 애정과, 이를 발전시키고자하는 집념은 이번 쾌거의 큰 밑거름이었다. 

8. 뒷받침

숨은 행정 지원은 '여자축구 황금세대'의 시작에 중요한 발판이었다. 잘 알려진 2002 한일월드컵 잉여금 투자 외에도 여자축구 관계자들의 세밀한 지원이 있었기에 여자축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도 바뀌었고, 가시적 성과도 따랐다.

5명 남짓 상주했던 여자 축구연맹 직원들은 당장의 성적도 좋지만, 여자축구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애썼다.

가장 먼저 '남자 아이들이 하는 격렬한 운동'이라는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각급 지도자들에게 '아름다운 축구'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짧은 머리에 우락부락한 표정, 남자 선수들과 나란히 세워도 구분 안가는 여자 선수들에게 '경기력에 지장이 없다면, 자신을 가꿔보라'고 권장했다.

   

각 대회의 스폰서들도 여성 의류업체와 가방업체 등을 선정해 선수들이 '꾸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줬고, 선수들 스스로도 그간 감춰왔던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2006년 피스퀸컵 여자축구대회에 앞서서는 앙드레김 패션쇼 무대에도 여자축구 선수들을 세우기 위해 애썼다. 선수 본인들이야 '하이힐보다 축구화가 편하다'며 어색했지만 드레스를 입혀 놓으니 축구선수인지 모델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여자축구가 아름답게 변하고 있었다.

얼짱 골키퍼로 이름을 날렸던 20세 대표 문소리나 인터넷상에서 일본 선수와 '얼짱 대결'을 펼치기도 했던 이유나 같은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선수들이 나타난 것도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운동만 하는 선수는 안 된다'는 원칙을 세워, '공부하는 축구' 실천을 위한 노력도 이어졌다. 한 학습지 회사의 지원을 이끌어내 대부분의 여자축구선수들이 학습지를 통해 마음 놓고 수준에 맞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


9. 온화함의 힘

17세 이하 대표팀의 최덕주 감독은 '온화한 리더십'의 대명사였다. 언뜻 보면 큰 체격에 희끗한 머리, 큰 코에 이마주름까지 '호랑이 선생님'으로 비춰지기 쉽지만, 아이들 한명 한명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고 선수들의 큰 실수에도 온화함을 잃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우승 뒤 인터뷰를 살펴본다면, 겸손함과 온화함을 갖춘 따뜻한 지도자임을 알 수 있다. 우승 후 그는 "어떠한 감독이라도 이 선수들을 데리고 벤치에 앉았더라도 우승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모든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경기를 봐도 안 풀린 순간 화를 내거나 답답해하는 모습 대신 골똘히 고민하고 선수들을 격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승 후에는 한없이 맑은 표정으로 선수들을 향해 박수쳐줬다. 여민지는 이런 최 감독에 대해 "따뜻한 아버지 같은 감독"이라고 표현했다.

'공을 즐겁게 차는 일'을 우선으로 여긴다는 최 감독. 그의 철학은, 승부 앞에서는 체벌도 욕설도 마다 않는 한국 체육계는 물론 승패에 연연해가며 남을 헐뜯는 게 일상이 된 우리 사회에도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10. 순수함의 힘

선수들은 이런 온화한 가르침을 그대로 흡수했다. 좋은 말로 하면 '만만하게 보는' 요즘 시대 사람들의 나쁜 습관은 없었다. 순수하고 진심어린 가르침을 가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천한 순수한 소녀들이었기에 가능했던 '신화 창조'다.

'순수함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불순물 없이 만들어진 쇳덩이가 가장 강하듯, 다른 생각 않고 오로지 목표만을 향해 모든 것을 쏟아낸 선수들의 자세가 세계 정상을 이끈 원동력이었다.

경기장 밖에서는 물장구 치고 깔깔거리던 소녀의 모습 그대로, 경기장에서는 나라를 대표한 여전사와 같은 투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우리들이 '태극소녀 신화'에서 배워야 할, 쉬워 보이면서도 행하기는 어려운 마지막 덕목이다.

출처 :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800055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800024
Posted by 파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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